시작페이지 | 무료회원가입 
 
 
   
총 게시물 28건, 최근 0 건
   

마니산(摩尼山)인가, 마리산(摩利山)인가?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09-04-12 (일) 14:19 조회 : 9195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에 있는 마리산(해발 469m)은 강화도의 최고봉이다. 단군 시조의 기록을 간직해 민족의 성지로 자리 굳힘 해왔다. 본래 '마리산'이던 것을 일제강점기 때 마니산(摩尼山)으로 바뀌어 불리다가 1995년 7월 27일 학계의 의견을 받아들여 '머리ㆍ으뜸ㆍ최고'의 뜻을 나타내는 '마리산'으로 정정하였다고 한다. 이 글은 일반적으로 마니산으로 불리는 오류를 바로잡고자 몇몇 자료를 참고로 기록하는 글이다. 《규원사화(揆園史話), 북애노인(北崖老人) 著, 조선숙종》에는 마니(摩尼)와 마리(摩利)를 구별하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으나 1995년에 '마리산'으로 바로잡았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널리 사용하였으면 한다.

다음은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군기(檀君記)에 기록한 관련 글이다.

「단군이 이미 제후를 봉하매 천하가 밝아지고 고요하더니 왕위에 있는지 십 년 만에 남쪽 오랑캐의 환란이 있었다. 이미 갑비고차(甲比古次)는 남이인(南夷人)의 땅이었다. 이에 부여를 보내어 병사를 거느리고 평정하게 하고 후에 부소와 부우를 더 보내서 갑비고차에 성을 쌓고 남쪽으로 내려와서 지키니 지금의 강화 삼랑성이 이것이다. 마리산(摩利山)에 참성단(塹城壇)이 있으니 이것이 곧 단군이 단을 설치하고 하늘에 제사지내던 두악(頭嶽)이다. <중략>

대개 장백산은 금 나라가 붙인 이름이다. 섭 융례(葉隆禮)의 요지(遼志)에 말하기를 『장백산(長白山)은 냉산(冷山) 동남쪽 천여 리에 있으며 흰 옷 입은 관음이 살고 있다. 그 산속의 짐승들은 다 희고 사람이 감히 들어가지 못하니 그 사이는 두렵고 모질다.』 라고 하였다. 또 흑수(黑水)가 이에 발원했다고 하고 명나라 일통지에 말하기를 『장백산은 삼만위(三萬衛)의 동북쪽 천여 리 밖의 옛 회령부에 있으니 남으로 육천리요, 옆으로는 삼천리를 뻗치고 높이는 이백리요 그 이마에 못이 있으니 둘레가 팔십리요 연못의 깊이는 헤아릴 수가 없다.』 하였다. 남쪽으로 흘러서 압록강이 되고 북쪽으로 흘러서 혼동강이 되고 동으로 흘러서 아야고하(阿也苦河)가 된다고 한다. 그런즉 불함(不咸)ㆍ개마(蓋馬)ㆍ태백(太白)ㆍ도태백(徒太白)ㆍ장백(長白) 등의 이름은 다 같은 산인데 그 이름이 달라 역대 방언이 된 것이다. 또 고려사에 『광종 십 년에 압록강 바깥 여진을 백두산 밖으로 몰아냈다.』라고 했으니 백두산이란 이름이 이에 비롯되었다. 그리고 개(蓋)자의 음이 백(白)자의 뜻에 가깝고 우리 말에 마(馬)와 두(頭)의 새김이 또한 같으니 개ㆍ마ㆍ백두의 글자는 다르나 뜻이 같은 것은 가히 분명하다. 백두란 이름의 내력은 또한 오래다.

우리나라의 모든 산이 마이(馬耳)와 마니(摩尼) 등 산이 있거늘 세상 사람들이 아울러 마리(摩利)로써 부르고 일찍이 서로 분별하지 아니하였다. 대개 마이와 마니가 아울러 머리 두 자의 머리로부터 나왔다. 지금 광주에 수리산(修理山)이 있으니 이는 반드시 취산(鷲山)의 뜻이요. 적성에 감악산(紺岳山)이 있으니 이는 현산(玄山)의 뜻이요. 충주에 달천(達川)이 있으니 월천(月川)의 뜻이다. 마니 마리의 두악이 혹 두산의 잘못 전해짐이 더욱 분명하지 아니한가? 태백의 딴 이름은 백두요, 갑비고차에서 하늘에 제사지내던 곳은 두악이니 이것이 단군이 제천함에 반드시 머리로 이름한 산을 따르게 한 것이 아니냐? 이에 단군이 하늘에 제사한 곳에는 반드시 머리로 이름한 산을 이루었다. 대개 머리란 가장 위에 있고 또는 으뜸을 일컫는 것이다. 백두산은 이 나라 모든 산의 으뜸이 되고 또 동인이 비로소 내려온 땅이다. 겸하여 다시 원수이신 단군이 항상 제천하는 예식을 그 산에서 행하니 당시 사람들이 반드시 두산이라 하였을 것이다. 갑비고차의 두악이 또한 예외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규원사화(揆園史話), 申學均 譯, 명지대학교 출판부 1975》

다른 자료로는 《고려사(高麗史), 김종서 정인지 등 著, 조선 문종》 강화현조에 「남쪽에 마리산이 있고(有摩利山) 산꼭대기에 참성단이 있는데(山頂有塹星壇) 단군이 제사지내던 곳이라 전해온다.」라는 기록이 있다. 그밖에 《세종실록(世宗實錄), 황보인 김종서 등 著, 조선 성종》에도 '마리산(摩利山)'으로 표기하였다.


   

 
 
최근게시물 :
ⓒ2004ㆍ빛의 공동체(The Society of Rays)ㆍAll rights reserved.